관광지 사람들 - 이승윤
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는
이 도시에서 난 살아
아니 사실은 죽어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나는 살아
좋은 자린 전부 역사가 차지하고
우린 무덤 위에서만 숨을 쉴 수 있고
어제를 파낸 자리에 오늘을 묻어야만 해
그래야 내일이란 걸?살아
그래야만 내일이란 걸 살아
과거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과거도 우리한테 빚을 지고 있다고
우린 끊임없이 그들을 되뇌이는데
그들은 딱히 우릴 기억해주지 않아
우릴 딱히 기억해주지 않아
여긴 그냥 관광지
우리는 관광지의 주민이지
여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사람들과 관광객이 주인이지
여긴 그저 관광지
우린 관광지의 주민이지
거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시간들과 관람객이 주인이지
우린 그냥 그 주위를 그리다가 글이 되겠지
박물관 앞에서 그림을 그려 파는
친구녀석이 묻더라
세기가 다섯 번을 더 지나도
나 같은 놈은 여전하겠지
벽의 여백엔 작품이 걸려 있고
밖의 공백엔 기념품이 널려 있지
저 안에 자리는 안 그래도 얼마 없으니까
하는 수 없이 헐값에 팔아
어제를 그려 오늘을 내일에 헐값에 팔아
과거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과거도 우리한테 빚을 지고 있다고
우린 끊임 없이 그들을 되뇌이는데
그들은 딱히 우릴 기억해주지 않아
우릴 딱히 기억해주지 않아
여긴 그냥 관광지
우리는 관광지의 주민이지
여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사람들과 관광객이 주인이지
여긴 그저 관광지
우린 관광지의 주민이지
거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시간들과 관람객이 주인이지
우린 그냥 그 주위를 그리다가 글이 되겠지
신청받았던 곡입니다. 처음 들었을 때 가사에 드러나는 이사람의 세계관에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던 곡 중 하나. 어떻게 이렇게 쉬운 가사로 시대의 거대한 모순을 풀어낸건지...
새의 전부 라디오(https://m.podbbang.com/channels/1773102/episodes/23398012)에서는 곡작업 비하인드가 나옵니다. 파리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초안을 썼다고요. 도시 전체가 위대한 죽은 자들의 업적으로 둘러싸여있고 하나같이 역사를 찬양하고 기리는 이 도시에서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것이 계기였던 모양입니다.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준, 우리의 역사를 기리고 지켜내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를 대신해줄 수는 없습니다. '밤하늘 빛나는 (…) 이미 죽어버린 행성의 잔해'는 아름다워 보여도 실제로는 이미 수명을 다해 죽고 없는 것들이죠. (*행성은 틀린 표현이지만 넘어갑시다..)
이미 지나갔기에, 또는 멀리 떨어져있기에 더 아름다워보이는 죽음들로 치장된 도시에서 사람들은 살아있는 대접을 받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우리들이 아닐까, 우리도 죽고 나서야 글이 되어 관광객들에게 읽힐까. <관광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가사가 정말 쉽기에 감상문을 준비하며 제가 해보고 싶었던 것은 이것을 개인의 문제로 바꿔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관광지가 아닌 우리들의 문제로.
우리가 배워온 지식은 살아 있는 것이었을까요?
죽음이 쌓아올린 도시처럼 우리도 지나간 사람들의 경험과 역사로 우리를 꾸미진 않았나요?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이미 죽은 자들의 것이라면 나는 살아있는 걸까요?
실제로 우리는 과거에게서 모든 것을 배우며 시작합니다. 그건 필요한 일이지만 가끔은 정도를 지나쳐 정해진 지식과 이론이 우리를 가두고 그렇게만 행동해야 하는 것처럼 만들죠. 이건 '관광객'의 탓도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남의 인생을 편하게 구경합니다. 쉽게 동정하고 쉽게 평가하며 입맛대로 동전을 던지죠.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박물관에 걸린 유명한 그림을 모작하는 것에 더 환호합니다. 죽은 사람들의 말을 실천하는 우리만 봐주고 우리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은 외면하는 구경꾼.
봐주는 사람도, 드러낼 무대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조차 스스로를 그려내는 것을 포기합니다. 자기 자신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가치를 낮추죠. 정말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주민은 나인데 죽은 지식들과 참견쟁이들이 주인처럼 내 삶을 쥐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내일이란게 뭔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는 지나갔고, 관광객은 곧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며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있는 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입니다. 빛나는 과거도, 미래의 희망도 현재를 밝히는 데 쓰여야지 그것들을 조명하느라 우리가 가리워지면 너무 많은 슬픈 일들이 생겨납니다. 느끼실거예요.
우리의 삶과 우리의 도시를 살아있는 사람들의 것으로 꾸며가면서 살아봐야겠습니다. 또 우리가 관광객이 되어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너무 쉽게 품평하지도 않아야겠고요. 감상문은 이상입니다만 커버곡을 요구받는 무명 싱어송라이터에 대입해 곡을 즐기셔도 재밌을 겁니다. 끝.
'기타 개인공간 > 깡숑감상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0929 깡숑감상문 <시적 허용> (0) | 2021.09.29 |
---|---|
210401 깡숑감상문 <무얼 훔치지> (0) | 2021.04.10 |
210320 깡숑감상문 <반역가들> (0) | 2021.03.25 |
210308 깡숑감상문 <새벽이 빌려 준 마음> (0) | 2021.03.25 |
210217 깡숑감상문 <굳이 진부하자면> (0) | 2021.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