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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8 깡숑감상문 <새벽이 빌려 준 마음>

가시우주 2021. 3. 25. 12:11

 

새벽이 빌려 준 마음 - 이승윤 

안테나가 전부 다 숨어버렸고
라디오는 노래들을 잊어버렸습니다
무지개가 뿌리째 말라버렸고
소나기는 출구를 잃어버렸습니다
새벽이 빌려 준 마음을
나는 오래도 쥐었나 봅니다
사람이 된 신도 결국엔 울었고
사람들은 그제서 눈물을 닦았습니다
새야 조그만 새야 너는 왜 날지 않아
아마 아침이 오면 나도 나도 그래
새벽이 빌려 준 마음을
나는 오래도 쥐었나 봅니다

 

역시 이 노래 감상문은 새벽에 써야 맞겠죠. 지루한 얘기로 다 재워버릴것입니다... 처음엔 무척 낯설고 다른 곡들보다 더 몽환적이고 모호한 노래였지만 듣다보니 '새벽'의 이미지와 무척 잘 어울리는 사운드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특히 동이 막 트기 직전의 고요한 어둠에서부터 여명이 밝아오며 시린 색으로 물드는 하늘. 이 노래에선 그러한 심상이 떠오릅니다. 새벽을 자주 봐온 분들은 아실거예요. 이 시간대가 얼마나 조용하고 외로운지.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죠.

'새벽감성'이란 말이 있습니다. 평소보다 좀더 센치하고 감성적이 되는 새벽. 하지만 동틀 무렵이 되어 감정이 고요해지는 이쯤이면 그토록 촉촉했던 마음도 퍼석하게 가라앉는 기분. 즐거움도 말라버리고 이상하게 눈물도 길을 잃어 더이상 나오지 않게 되고, 잠시 갖고있던 뭔가를 잃은 공허함이 듭니다.

그제서야 자기가 쥐고 있던 '새벽감성'을 돌이켜봅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던 것에도 나를 특별히 울고 웃게 만들던 이 마음들은 어쩌다 나에게 온 것이었을까요? 이 감정들도 원래 주인이 있지는 않을까요? 누군가의 마음이 새벽의 시간을 빌려 서럽게 돌아다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람이 된 신도 결국엔 울었고 /
사람들은 그제서 눈물을 닦았습니다

어쩌면 새벽이 빌려주는 마음은 누군가가 공감해주고 이해해주길 원하는 감정들이 넘쳐 흐르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새벽을 빌려 흘러들어온 마음은 나의 것이 아니기에 동이 트는 것과 동시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새벽에게 마음을 빌리는 사람이 있다면, 새벽에게 마음을 빌려 주는 사람도 있겠죠. 아침이 오면 그 마음들은 다시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걸까요? 나를 펑펑 울게 만들고, 작은 새를 날지 못하게 만들던 그 마음을, 그것을 돌려 받은 사람은 아침이 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나처럼 울게 될까요.

그러고보니 나도 종종 새벽에 마음을 빌려주었던 것 같습니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도 운이 좋게 잠에 들었던 날이면 넘쳐흐른 마음을 새벽이 빌려다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었겠죠. 아마 나도 아침이 오면, 나의 마음을 돌려받게 될 것 같습니다.

동트기 전, 제일 차갑고 어두운 새벽이 공허한 이유는 빌려준 마음도, 빌린 마음도 내게서 떠나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나는 이제껏 새벽이 빌려준 마음을 얼마나 오래 쥐고 있었던 걸까요. 모든 마음이 떠나고 메말라버린 내 원래 모습이 이토록 낯선 이유는 뭘까요.

그 이유는 언제까지나 알 수 없겠지만, 이것 또한 새벽의 마음일 뿐입니다. 아침이 오면 나는 다시 나의 마음으로 살아가겠죠. 그러다 버거워질 때면 새벽을 빌리면 됩니다.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빌려다 울어 주면 나의 눈물이 한 방울 덜 흐를지도 모르죠. 원래 새벽은 그런 건가 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