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개인공간/깡숑감상문

210205 깡숑감상문 <무명성 지구인>

가시우주 2021. 3. 25. 11:07
무명성 지구인 - 이승윤

이름이 있는데 없다고 해

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는 걸까
이름이 있는 것만으로
왕이 부릴 수 없는 그런 곳은 없을까
명왕성에나 갈까
아참 너도 쫓겨 났구나
가엾기도 하지
근데 누가 누굴 걱정 해
안녕 난 무명성 지구인이야
반가워 내 이름은 아무개
기억 할 필욘 없어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젊음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리 그래도 무언간데
아무 것도 아니래 필요치 않으면
곱씹어 볼수록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이란 말은 너무나 잔인해
모래도 언덕도 바람도
달 그림자도 있는데
샘이 숨겨져 있지 않은
사막이라도 아름다울 순 없을까
안녕 난 무의미한 발자취야
반가워 내 이름은 아무개
기억 할 필욘 없어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희망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이름 없는 생물의 종만 천만 개체라는데
이름 하나 새기지 않고 사는 삶도
자연스러울 수 있단 거잖아
삶이란 때빼고 광내거나
아니면 내빼고 성내거나일까
신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신이 말하길
난 이름이 없어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희망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언어유희 정리)

 

무명가수전 싱어게인이 끝나기 전에 이건 꼭 해야겠다싶어서 들고온... 기본적으로 무명의 삶에 대한 의문을 언어유희로 풀어낸 가사인데 가사가 쉬우니까 오히려 어렵고 머리아프게 풀어볼 예정입니다(노잼)

이름과 한자로 동음이 되는 것을 차용해 온갖 언어유희를 하지만 실은 처음부터 대놓고 문제제기를 합니다. "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는 걸까?" 왜 이름이 없다는 뜻의 무명과 명성이 없다는 뜻의 무명을 같은 의미로 쓰냐는 거죠.

곡 전체에 쓰인 '이름'의 이중적인 의미는 대충 이걸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①내 존재 자체, ②다른사람이 보는 내 존재의 의의. 이것이 초반에 각각 이름과 명성이라는 단어로 구분되어 나옵니다. 이 둘은 분명 다른데도 세상에선 같은 '이름'이란 단어로 쓰이고 있죠.

이런 문제제기와 함께, 곡 후반부의 격정적인 부분에서는 아예 본인이 생각하는 결론까지 외쳐버립니다. "이름 하나 새기지 않고 사는 삶도 자연스러울 수 있단 거잖아." 다른 사람이 불러주는 이름(존재의의)이 없더라도 자신의 이름(존재)로 살아가면 안되냐는 느낌.

이런 의문을 품게 된 데에는 역시 또 특유의 삐딱한 생각이 존재합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곳에 샘이 숨겨져있기 때문이다'라는 멋진 문장이 있었죠. 윤은 거기서 반대로 샘이 없는 사막은 아름답지 않은가? 라는 질문을 해보는 거예요.

잠시 한발짝 더 나아가자면.. 이 문장은 사실 인생에 대한 비유죠. 팍팍하고 힘든 삶이라도 거기에 짧은 기쁨과 성취가 있으니 삶은 아름다운 거라고요. 그 뜻에 대해서도 '과연 그러한 기쁨과 성취가 없는 삶은 그러면 아름답지 않은 건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삶 속에 잠깐 쉬었다 갈 샘조차 없는 사람이 듣기에 저런 말은 너무나 잔인한 말이 아닐까. 그냥 존재만으로 아름다울 수는 없을까, 꼭 거기에 이유가 붙어야만 우리의 존재는 인정받을 수 있는 걸까. 그런 고민을 갖고 윤은 무명실로 자신의 마음을 기워내고 있습니다. 

단순하지만 그리 쉽지는 않은
마음과 마음의 헝겊들로 기워진 옷을
난 네가 입어주길 바라지만을
난해한 차림으로 보일 수밖에
-<어버버버>

 

자신의 존재는 무엇일까요. 남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어야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될 수 있는 걸까요. 그 전의 나는 아무것도 아닐까요. 이러한 질문과 소신발언 끝에 곡의 클라이막스에서 윤은 "신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신이 말하길 난 이름이 없어"라고 했다고 표현합니다.

(종교를 다 떠나서!) 신에겐 신을 부르는 사람의 수만큼 수많은 이름이 있지만, 그 어떠한 이름도 신 자신의 이름은 아닙니다. 신은 이름 없이도 그저 존재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모두의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죠. 누가 신을 개똥이라 부른다고 해서 그게 신을 부르는 것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윤은 우리도 그렇다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그저 존재하고 있고, 어떤 이름을 갖다붙여도 우리의 존재를 왜곡시킬 수는 없다고. 우리는 모두 무명성의 지구인이며 이름 없이도 너무 잘 살아가고 있다고요. 그러니 같이 화이팅하자는 의미로 감상해보았습니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