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개인공간/깡숑감상문

210130 깡숑감상문 <달이 참 예쁘다고>

가시우주 2021. 3. 25. 10:47
달이 참 예쁘다고 - 이승윤

밤 하늘 빛나는 수만 가지 것들이

이미 죽어버린 행성의 잔해라면
고개를 들어 경의를 표하기 보단
허리를 숙여 흙을 한 웅큼 집어들래
방 안에 가득히 내가 사랑을 했던
사람들이 액자 안에서 빛나고 있어
죽어서 이름을 어딘가 남기기 보단
살아서 그들의 이름을
한번 더 불러 볼래
위대한 공식이 길게 늘어서 있는
거대한 시공에
짧은 문장을 새겨 보곤 해
너와 나 또 몇몇의 이름
두어가지 마음까지
영원히 노를 저을 순 없지만
몇 분짜리 노랠 지을 수 있어서
수만 광년의 일렁임을 거두어
지금을 네게 들려 줄거야
달이 참 예쁘다
숨고 싶을 땐 다락이 되어 줄거야
죽고 싶을 땐 나락이 되어 줄거야
울고 싶은만큼 허송세월 해 줄거야
진심이 버거울 땐
우리 가면 무도회를 열자
달 위에다 발자국을 남기고 싶진 않아
단지 너와 발 맞추어 걷고 싶었어
닻이 닿지 않는 바다의 바닥이라도
영원히 노를 저을 순 없지만
몇 분짜리 노랠 지을 수 있어서
수만 광년의 일렁임을 거두어
지금을 네게 들려 줄거야
달이 참 예쁘다고 

 

오늘은 노래 호흡대로 천천히 써보는 감상문. 거창하고 위대한 것들보다 지금 바로 여기, 현재와 내 곁의 사람들을 사랑하고자 하는 작은 마음이 빼곡히 담긴 곡입니다... 가사 진짜 너무 예뻐

우주는 정말 경이롭죠. 우리가 개념으로만 알고 있는 거대한 폭발에서 태초의 별들이 태어났고, 그 별들이 다시 죽고 폭발하며 새로운 별과 새로운 물질들이 탄생해 지금의 우주가 되었다고들 합니다. 지구의 모든 것이, 우리 몸을 구성한 모든 것은 별로부터 왔기에 우리는 별의 자손이기도 하다고요.

우주의 까마득한 크기와 역사는 우리가 경의를 표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우주를 사랑하고 그 위대함을 찬양하죠. 그러나 가사에서는 우리를 위해 죽어버린 별들에게 경의를 표하기보다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는 땅을 향합니다. 사람들이 좀처럼 바라보지 않고 있던 곳이요.

한 사람의 세계란 저 멀리 우주까지를 포함할수도 있지만, 가끔은 내가 있는 방 하나를 겨우 다 채우는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방구석에서 무언가를 지어내려는 사람이라면 더욱이. 방 안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액자가 걸려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이게 작은 나의 세계인 거죠.

거대한 시공에, 위대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지만 숲만 보다 보면 나무를 놓치고, 그 아래 있는 작은 풀꽃은 더더욱 안보이게 됩니다. 나의 이름을 억지로 새기려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 한번, 손 한번 부르거나 잡지 못하고 시들어버리는 게 우리 삶일지도 모르고요.

영원과 이상은 아름답지만 정작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짧은 시간, 작은 마음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짧은 문장으로나마 새겨둔다면, 그리고 그것을 노래로 지어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거창할 필요 없이, 그저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는 다짐 같은 것을.

당신의 곁에 있는 나는 대단한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지도, 새 사람을 만들거나 하지도 않고 그저, 당신을 위로하고 안아줄 수 있다면 만족합니다. 지금 여기서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나의 모든 마음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마음을 새기고 싶었던 건 나뿐만이었을까요?

"달이 참 예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건넸을까요. 작은 마음이라고 생각했던 그 짧은 문장도 수많은 사람들이 우주에, 거대한 시공에 새겨 온 공식이라면 이 또한 수만 광년을 일렁여온 빛나는 별이 아닐까요.

달이 참 예쁘다고, 내가 지금 건네는 이 문장도 사실은 온 우주를 돌고 돌던 거대한 말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여기, 나의 현재와 나의 작은 방, 내 세계가 되어준 사람들을 사랑하던 말. 그렇게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변치 않을 달에 걸고, 지금의 마음을 당신에게 전해 봅니다.

TMI+ 한때 나츠메 소세키가 'I Love You'를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했다는 출처 모를 일화로부터 '달이 예쁘다'='사랑한다'는 공식 아닌 공식이 생겨났습니다. 그걸 자연스레 자기식대로 풀어 쓴 가사라고 생각하는데... ... (이게 가능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