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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유 코리아 2021년 4월호 인터뷰 - 이승윤

가시우주 2021. 3. 25. 12:58

 

반골 기질이 강하시죠?
"엄청 강하죠. 빈정거리기도 잘해요."

세상과 타협한다는 기분이 드는 걸 반기지 않는 건가요?
"아니죠. 저도 세상의 구성원인데. 타협해야 할 부분이란 있는 거고,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이승윤은 과거 알라리깡숑이라는 밴드로, 그리고 솔로로 <달이 참 예쁘다고>, <영웅 수집가> 등 몇 차례 음반을 냈다. 그의 표현을 쓰자면 '앨범을 쓸데없이 많이 내서 몇 장인지 세지도 못하겠다.' 10년 전 대학가요제에 나갔을 때는 '내 음악이 남들에게도 필요한 음악인지 시험해보기 위해' 참가했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꽤 많은 이승윤의 영상 자료를 찾아보면 그는 '필요'라는 말을 자주 쓴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의 쓸모와 필요성을 생각하는 건 세상에서 나의 좌표를 가늠하는 일과 비슷하다. '무명'이 아니라 '유명세가 없을 뿐'이라던 그는 방구석이라는 좌표에서 그가 만들어낸 음악과 세상의 상호작용이 궁금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유효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다면 저 혼자 간직하면 되는 거잖아요. 내가 나를 아끼는 것과 별개로 다른 사람에게도 이게 필요할까. 저에겐 경험치가 필요했어요. 내 음악이 누군가에게 가 닿는 경험."

세상의 기준으로 무명이던 인물이 금세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우승자가 됐다는 드라마보다 먼저 쓰인 드라마가 있다. 사실 이승윤이 2020년 말까지만 음악을 하자고 결심했다는 점이다. 용기 없다는 그가 음악 생활의 마지막까지 미뤄 놓은 두 가지가 '오디션에 진심을 다해 참가하는 것'과 남의 노래를 불러 내 이름을 알리는 것'이었다. 용기 낸 걸음 앞에 날벼락 선물 같은 인생의 사건이 벌어지면, 마음을 고쳐먹었더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식의 깨달음이 스치진 않을까?


"제가 염세주의자라 정말 최선을 다하니 이렇게 잘됐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 생긴 사람의 말은 결과적으로 덜 좋은 상황의 사람에게 폭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정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용기와 최선이 저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 건 사실이에요. 저는 작은 세계에서 혼자, 우리끼리 열광하며 음악 하는 삶 속에 있었기 때문에 제 장점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어요. <싱어게인>은 제가 잘하는게 뭔지 정리하고 설명해줬죠."

이승윤이 <싱어게인>에서 보여준 '치티치티 뱅뱅'은 문제적 무대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 그는 '누가 이기든 지든 패배자를 심사위원으로 만들자'고, 투지도 긴장감도 없는 억양으로 센 말을 했다. 무대가 시작되고 그가 뱉은 첫 가사는 '너의 말이 그냥 나는 웃긴다.'
심사위원과 평가받는 자, 수십 대의 카메라와 무대 위에 홀로 선 참가자라는 구도를 뒤집고, 큰 음폭 안에서 예상할 수 없는 전개로 튀며, 무대 시작 전 멘트부터 남의 노래를 가져온 그 무대의 끝까지 스스로 설계한 것처럼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와 이승윤식 해석. 그가 무대에서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 놀랍게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저는 애초 '판단하기 어려움'을 콘셉트 삼았죠(웃음). 첫 무대와 그에 대한 심사평까지 제가 의도한 바대로 흘러갔어요. 딱 첫 무대까지는 그랬어요. 그다음엔 무진이와 팀을 이뤄 홍일이 형을 떨어뜨려야 했고, 또 그다음엔 제가 무진이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됐죠. 아, 이젠 그만해야겠다 싶었어요. 경연이지만 경연답지 않게 플레이하겠다는 마음으로 각오하고 시작한 일인데도 도저히 저와 맞지가 않았어요. 이효리 님의 '치티치티뱅뱅'은 의도적으로 고른 곡이에요. 오디션용이라고는 할 수 없는 스타일의 곡을 제 맘대로 부르고서 마치자는 생각이었거든요. 그게 마지막 무대가 될 줄 알았는데... 추가 합격은 예상 못했어요(웃음). 도망치려고 했는데 저를 붙잡아준 거예요."

이승윤은 도망자를 자처했으나, 그의 무대를 맛본 심사위원들은 그를 쉽게 놔주지 않았다.
"저에게 고마운 기회를 준 거잖아요. 제가 필요하다는 거잖아요. 그때부터는 매 라운드마다 좀 더 목적을 가지고 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주변 친구들조차 잘 듣지 않던 음악'을 한 이승윤이 이제 와 그를 가치 있다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겪는 낙차는 그에게 묘한 기분을 안겨줄 법하다. 나는 이승윤이 방송에서도 자주 내비친 '주제 파악'하는 태도나 자조적인 면이 원래 그의 성정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지금은 들뜨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가 어릴 적엔 '음악 천재인 줄 착각한 시절'이 있었다는 답을 들었다. '시건방진'태도는 음악적 세계를 완벽히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끄러움으로 변해갔고, 거기에 센 자존심이 얽히길 거듭하다 점점 그릇이 작아진 것 같다고 그는 돌아봤다.


"방송이라는 포장도 있으니 저는 누군가에게 영웅이 되어 있을 것 같아요. 그것도 두렵지만, 그들의 말에 취해서 제가 영웅이 되고자 할까 봐 그게 가장 두려워요. 세상에 차근차근 등장한 게 아니라 갑자기 이렇게 됐어요. 조심하거나 함구해야 할 일이 생기면서 친구들과의 대화도 다소 일차원적으로 변하더라고요... 제가 앞으로 친구들에게 가식적인 사람이 되지 않길 원해요."

시작은 했으나 도중에 '런'할 마음을 품었던 이승윤은 도망에 실패한 결과 도전에 성공했다. 용기를 내고 갈등을 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음악을 게을리하지 않았을텐데, 우리는 왜 이제야 그들을 알게 됐을까?
"도망치려 했던 제 시도 자체는 후회하지 않아요. 그리고 다시 기회가 주어졌을 때 또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이죠(웃음)."